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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원변천사

국립농업과학원 2008. 10 ~ 2025. 02

2008년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농업과학기술원,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농업공학연구소를 통합하여 국립농업과학원(5부 1연구단 1센터)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기존 농업환경부, 농업생물부, 농산물안전성부에 편입된 농업생명공학연구원을 농업생명자원부로 농업공학연구소를 농업공학부로 하여 5부 체제로 재편하였다. 기존 농촌자원개발연구소를 한식세계화연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신설하였다. 그다음 해인 2009년 한식세계화연구단을 농식품자원부로 개편하여 6부 1연구단 1센터의 조직체계를 갖추게 된다.

2012년 직제개편을 통해 유기농업과 등 4개 과의 소속을 재편하고, 토양비료과 등 9개 과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개발된 농업기술이 농업 현장에 활용되고 쓰일 수 있도록 총액인건비제로 기술지원팀을 신설하였다.

2014년 정부조직법에 따라 농촌진흥청을 수원에서 전라북도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하고, 국립농업과학원도 청사를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일대로 이전하게 된다.

2015년 밭농업기계화율을 높이기 위해 총액인건비제로 밭농업기계화연구팀을 신설하고, 2016년 농업인의 안전과 재해 예방을 위해 농업인안전보건팀을 신설하게 된다.

2020년에는 미생물연구 강화를 위해 벤처형 조직의 환경개선미생물연구단을 신설하였고, 2021년에는 기술지원팀을 정식 직제인 기술지원과로 신설하였다. 2023년 농업인안전보건팀을 폐지하고 안전과 재해예방을 통합하여 안전재해예방공학과를 신설하였다.

2024년 차세대 중형위성 표준 플랫폼을 활용한 광역 농업 상황 관측, 홍수·가뭄 등 재해대응, 농작물 조사·분석 등 공공서비스 제고를 위해 「농업위성센터」를 설립하고, 연구인력(8명)을 확대하였다. 2019년부터 시작된 「농업위성(차세대 중형위성 2단계) 개발사업」은 광역 농지 및 산림에 대한 신속·정확한 정보 취득과 활용을 위한 위성개발 사업으로 농진청, 산림청, 우주항공청이 참여하였고, 2026년 발사 예정이다.

국립농업과학원 2025. 02 ~ 현재

2025년 기후위기, 저출산·고령화 등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농업의 경쟁력 향상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조직개편을 추진하였다. 농업의 미래성장산업 육성을 위한 스마트기술, 그린바이오기술 등 첨단융복합 분야의 기구를 신설·강화하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을 위해 농촌소멸 대응, 농업인 안전 및 밭농업기계화 등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농업환경부는 기후변화, 탄소중립 관련 기술개발 및 정책대응의 중요성으로 기후변화대응과를 주무과로 편제하고, 밭가뭄 대응 등 물 관리 연구 강화를 위해 토양비료과를 토양물환경과로 과명을 변경하였다. 유기농업과의 병·해충·잡초 방제기능은 농산물안전성부로 이관하고, 유기농에 대한 인식변화, 친환경 재생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여 토양비료과의 유기성 자원 연구 기능을 이관 받고 재생유기농업과로 과 명칭을 변경하였다. 기존 농업환경부에 소속된 농촌환경자원과는 농촌재생, 농업인 안전연구 기능을 통합·강화하기 위해 원장직속의 농촌환경안전과로 편제하였다.

농업생물부는 미생물 자원 및 정보의 확보·제공, 생명공학 원천기술 개발 등 미생물 연구기능 강화를 위해 연구 인력을 확대하였고, 그린바이오 소재 연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농업생명자원부의 생물소재공학과를 식물소재바이오공학과로 변경하고 농업생물부로 배치하여 기존 3과 체제에서 4과 체제로 확대 개편하였다.

농산물안전성부는 과수화상병 유입, 배추 선충 확산 등 기후변화에 따라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식물병과 해충·잡초 방제 연구의 확대를 위해 작물보호과를 식물병방제과와 해충잡초방제과로 분리하여 연구 기능을 강화하였다.

농업공학부는 빅데이터·인공지능 활용 최적화, 농작업 무인화 및 스마트 농업 확대 등 미래 기술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밭농업기계과(전 밭농업기계화연구팀)와 농업로봇과를 신설하고, 스마트팜개발과에 연구인력을 확대하였다.

농업생명자원부는 디지털육종 연구와 산업을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디지털육종 연구 강화를 위해 유전체·표현체 정보분석 기능을 통합하고 인력을 증원하여 디지털육종지원과를 신설하고, 그린바이오 산업 지원을 위해 농생명분야 빅데이터 분석·활용·서비스 기능을 통합한 슈퍼컴퓨팅센터를 신설하였다.

농식품자원부는 식량작물 기반의 식생활 및 발효가공 연구와 첨단 푸드테크 연구 기능 강화를 위해 국립식량과학원으로 이관하였다.

국립농업과학원은 2025년 조직개편에 따라 5부 3센터 21과 체제를 갖추게 된다.

조직도

농업과학기술원 1994. 12 ~ 2008. 10

1994년,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농업기술연구소, 농약연구소, 농업유전공학연구소 등이 통합된 농업과학기술원(농과원)이 발족됐다. 이 때에 농림부 산하 자재검사소의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 검사업무가 농과원으로 이관되었다. 농과원은 농업환경부, 작물보호부, 생물자원부를 두었으며 그 정원은 420명이었다. 1998년, 우리나라 농업시험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잠업시험장이 잠사곤충부로 농과원에 통합되었다. 이때의 정원은 492명이었다. 1998년 정부의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해외병해충연구기능이 국립식물검역소로 이관되었고, 2000년, 정부의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농진청에 속했던 유전자원과가 농과원으로 복귀되었다. 2002년, 농업생명공학연구원이 설립됨에 따라 농과원 생물부의 농업유전공학연구기능은 농업생명공학연구원으로 이관되고, 농촌생활과학연구소가 농과원 소속기관으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농과원은 3부(농업환경부, 작물보호부, 잠사곤충부) 1연구소(농촌생활과학연구소)의 직제를 갖게 되었다. 2004년 초, 농과원에는 내부적 조직개편이 있었다. 잠사곤충부의 연구기능은 식물병리과, 농업해충과, 잡초관리과, 곤충양잠산업과, 유용곤충과로 구성된 농업생물부로 이관되었다. 종전의 작물보호부의 일부 기능과 신설된 친환경농업과 및 농약평가과로 구성된 농산물안전성부가 신설되고 농업환경부는 존치되고, 농촌생활연구소는 농촌자원개발연구소로 개편되었다.

원장

  • 기획연구실





  • 농업환경부

    • 환경생태과
    • 토양관리과
    • 식물영양과
    • 응용미생물과
  • 농업생물부

    • 식물병리과
    • 농업해충과
    • 잡초관리과
    • 곤충양잠산업과
    • 유용곤충과
  • 농산물안전성부

    • 유해물질과
    • 친환경농업과
    • 농약평가과
  • 농촌자원개발연구소

    • 농촌환경자원과
    • 농업인복지과
    • 농산물가공이용과

농업과학기술원의 조직(2004년 1월)

원장
기획연구실
행정과
농업환경부
  • · 환경생태과
  • · 토양관리과
  • · 식물영양과
  • · 응용미생물과
농업생물부
  • · 식물병리과
  • · 농업해충과
  • · 잡초관리과
  • · 곤충양잠산업과
  • · 유용곤충과
농산물안전성부
  • · 유해물질과
  • · 친환경농업과
  • · 농약평가과
농촌자원개발연구소
  • · 농촌환경자원과
  • · 농업인복지과
  • · 농산물가공이용과

최근 농업과학기술원의 조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임무 면에서 오늘의 농업과학기술원은 그 전신(前身)인 식물환경연구소와 현저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식물환경연구소의 임무가 농산물 증산을 위한 토양과 병해충의 적절한 관리기술을 확립하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음에 반해 농업과학기술원의 임무는 환경과 농업의 통합적 이해에 바탕을 둔 생산과 보존의 최적화를 추구하며 농업과 농촌이 지니는 종합적 가치를 재평가 활용하는 방안을 탐구하는, 고도로 성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과학기술원이 발족 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10년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나라 농업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의 변화가 심했다. 1992년의 리우세계환경회의, 1995년의 WTO 출범, 1996년 한국의 OECD 가입, 2001년 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 등은 우리나라 농업의 입지를 점점 좁혀오기도 했고 농업과 농촌이 지니는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고 했다. 이들 일련의 국제적 환경변화는 우리 농업으로 하여금 크게 두 가지 길을 모색하게 하였다. 그 한 길은 농업에 대한 생각의 틀을 생산측면에만 몰입하는 농업으로부터 환경도 배려하는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한 길은 종전보다 경쟁력이 훨씬 더 높은 농업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농업의 지속성을 추구하고 농산물시장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적 기류 속에서 우리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조되는 웰비잉(Well-being) 지향기류는 농업을 농산물 생산수단만으로, 농촌을 농업이 이뤄지는 공간만으로 바라볼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농업과 농촌이 지니는 국민의 웰비잉을 지향하는 부가가치를 개발하여 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연구기관들의 임무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농과원은 발족 이래, 끊임없이 그 임무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수정해왔다. “병해충 박멸”, “병해충 완전방제”라는 생각의 틀로부터 “병해충 잡초의 종합관리(Integrated Pest Management : IPM)"라는 생각의 틀로 전환해온 것, ”최고수익(Maximum economic return)"을 지향하는 시비기술 또는 토양관리기술로부터 “작물양분종합관리(Integrated Plant Nutrient Management : IPNM)"와 ”환경보존형 토양관리“라는 생각의 틀로 전화해오는 한편 민간에서 제안되는 대안농업기술들의 효과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병해충 잡초 종합관리에 대한 연구의 경우 여러 측면의 생물학적 관리기술로 농가에 확산되는 성과를 보여 병해충·잡초관리에 있어서 합성농약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킬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작물양분 종합관리의 경우는 토양검정치와 작물의 양분요구 특성을 고려한 시비량을 결정하는 단계를 넘어 농업시스템 전체의 작물 양분수지를 추적하는 단계로 접근하고 있다.

OECD 회원국으로써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와 관련된 연구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그 결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논에서의 메탄가스발생양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괄목할만한 기여를 해왔다. 쌀농사의 가치를 쌀의 생산이란 측면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비교역적가치(Non-tradable value) 또는 공익적 가치도 우리나라와 같은 특이적인 지역의 쌀 농사를 정당화하는 척도(Parameter)의 하나이어야 함을 뒷받침 하는 연구도 심도 있게 해왔다.

농과원은 정보화 면에서도 일익을 담당해왔다. 정밀토양도의 수치화를 필두로, 원격정보의 활용을 위한 기초 확립, 토양정보관리서비스 시스템, 작물영양진단서비스시스템, 병해충 및 잡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등을 구축하여 웹상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생물자원의 심도 있는 이해와 활용을 위하여 잠업에 대한 100년의 역사적 연구배경을 가진 두뇌집단이 농과원으로 융화되어 들어 왔다. 이 두뇌집단이 작물보호라는 입장에서 곤충들을 주로 해충으로 바라보면서 연구해오던 두뇌집단과 융화되어 일 할 때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조직상 아쉬웠던 점은 농촌진흥을 목표로 하는 연구와 지도를 하는 기관이면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문, 사회과학적 부문에 대한 연구기능이 취약했던 점이었다. 다행히 2004년 초 구조조정과정에서 그동안 농촌의 의/식/주 및 농업인의 건강문제 등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경험을 축적해온 농촌생활연구소가 농촌자원개발연구소로 개편되어 농과원에 속하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변화였다. 특히 사회의 웰비잉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더이상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기만 하지 않은 상황에서 농업기술연구가 농촌이 지니는 인문적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농촌자원개발연구소가 농과원의 한 축이 된 것은 의의가 크며 앞날이 크게 기대된다.

농과원의 지난 10년을 회고할 때 아쉬운 점도 있다. 그것은 그간 잦은 구조조정이 있는 가운데 각급 의사결정권자들의 이동(異動)이 빈번했던 점에 대하여 뒷날 역사를 쓰는 이들이 어떻게 쓸지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탁월한 지도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직책에 재임하는 기간이 짧으면 소신을 펴기 어려울 것임을 감안하면, 더구나 연구란 지속적인 고구(考究)를 요하는 점을 감안하면 연구기관의 각급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의 빈번한 이동은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연구기관의 경우이던 적절한 지적자원관리도 인적자원관리 못하지 않게 중요하다. 더구나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연구진행과정에서 생산되는 각종 정보를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관리하는 것은 연구의 생산성과 신빙성을 제고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연구기관의 발자취를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돌아볼 때에는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자원의 투입이 적절했는지도 살피는 것이 관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농업과학기술원은 발족 이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 많은 도전에 직면해왔다. 그런 중에도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고 성과도 이룩했다. 그러나 농과원의 앞에 놓인 도전이 더 고무적이다. 우리농업에 가해지는 외적 압력은 더 준엄(俊嚴)해지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역량은 우리 농업을 의연히 살아남게 할 것이며, 우리 농업과 농촌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여 우리 농업과 농촌이 전 국민의 사랑과 아낌을 받는 농업과 농촌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데에 농과원도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과원이 다양한 배경을 갖는 두뇌집단의 융합체로 짜여지고 정보화기술과 여러 가지 새로운 인력관리기법, 지식관리기법, 연구관리기법들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농과원이 그 소임을 성공적으로 성취할 전망은 더욱 밝을 것이다.

농업기술연구소 1973. 09 ~ 1994. 12

1962년에 식물환경연구소가 설립될 때 정원은 45명이었으나 토양비옥도사업, 토양조사사업, 저위생산지개량사업, 작물보호훈련강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정원이 165명으로 증가했다. 장차 토양, 비료 및 작물보호 이외의 기초연구분야를 수용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필요할 것으로 예견되어 1973년 7월 식물환경연구소는 농업기술연구소로 개칭되었다. 이 때에 토양조사 및 연구, 작물보호 연구업무의 일부를 호남농업시험장과 영남농업시험장으로 각각 이관하면서 연구 인력도 할애 조치했다. 이로써 토양조사 및 연구, 작물보호 연구업무에 대한 지역간 역할분담 체계가 시작되었다.

식물환경연구소가 농업기술연구소로 개칭될 때의 직제는 관리과, 농화학연구 담당관실, 토양물리연구 담당관실, 토양화학연구 담당관실, 병리연구 담당관실, 곤충연구 담당관실, 균이연구 담당관실 등이었으며 그 정원 141명이었다. 1976년, 영양생리 연구 담당관실과 유전연구 담당관실이 신설되었다. 당시 새로이 거론되기 시작한 유전공학에 대한 연구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조치였다. 1978년, 농업과학기술원에 처음으로 화학부와 생물부를 설치했다. 조직이 방대해져 각 과장이 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부적절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

1979년, 농공이용연구소가 농업기계화연구소로 개편됨에 따라 농산물이용과와 농촌열자원과가 농업기술연구소로 이관되었다. 농업기계화 연구의 강화 요구가 커졌고 농공이용연구소의 농업토목분야 연구는 농어촌개발공사가 맡게 됨에 따라 농공이용연구소의 농업기계분야 연구부서를 중심으로 농업기계화연구소를 설립하고, 화학과 분석기법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이용과와 농촌열자원과는 농업기술연구소로 이관되어 화학부에 배치했다.

1981년, 농약연구소의 신설에 따라, 작물보호관련 연구기능 중 농약개발, 병해충방제기술, 품목고시 등과 관련된 분야는 농약연구소로 이관하고 농업기술연구소는 병해충의 생리생태 등과 관련된 기초연구분야를 분담하게 되었다. 한편, 기구축소 차원에서 농촌열자원과는 폐지되고 그 연구기능은 농화학과로 흡수되었으며 유전과와 영양생리과를 통합하여 생리유전과를 신설했다. 1986년, 유전공학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어 생리유전과를 영양생리과와 유전공학과로 분리시키고 농업유전공학연구실을 신설했다.

1991년 유전공학연구기능을 신설된 농업유전공학연구소로 이관했다. 농업기술연구소는 1994년 농업과학기술원이라는 방대한 기관으로 재편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농업기술연구소는 70년대와 80년대에 특히 괄목할만한 업적을 성취했다. 그 시기는 농촌진흥사업이 큰 발자취를 남기던 때였다. 국가적으로 볼 때, 70년대 초반의 대대적인 야산개발 및 간척지 개발을 통한 농지확장 사업 추진, 70년대의 쌀 녹색혁명(綠色革命) 성취, 80년대의 원예작물생산 분야의 백색혁명(白色革命) 성취 등 중요한 업적이 이뤄지는 동안 농업기술연구소는 식물환경연구소 시절부터 축적해온 토양비료분야와 작물보호분야의 기초정보를 활용하여 국가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실용성 있는 기술들을 개발하여 농업기술보급사업을 도울 수 있었다. 신개간지 토양의 조기숙전화기술(早期熟田化伎術) 및 간척지 조기제염기술(早期除鹽技術) 개발, 새로운 다수성 벼 품종을 이용한 쌀 다수확기술개발, 신품종 다수성 벼의 병해충 발생특성구명(도열병균의 생리형 확인 등) 및 내병성 품종 육종을 위한 활용기술 확립, 시설재배 하에서 초집약적으로 이용되는 토양의 비옥도 변동 파악과 합리적인 비옥도 관리 기술 확립, 신작목인 양송이의 재배기술 조기 확립 등이 특히 괄목할만한 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환경친화형농업 논의 대두와 함께 다수확지향 농업으로부터 환경배려형 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시도가 태동했던 점도 언급할 만한 변화였다. 농업기술연구소가 이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다. 그 여러 요인들 가운데 사회전체의 성장 분위기와 정부의 지속적인 농업기술 중시 정책 하에서 농업연구기관들이 일관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매진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중요했던 것 같다. (글상자 2 참조)

글상자 2. 농업기술연구소의 사회적 배경과 목표 성취 :

1. 시대적 배경

농업기술연구소가 존속되던 때는 정부의 3차, 4차, 5차, 6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이 기간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연 평균 두 자릿수에 가깝던 때였으며 정부가 일관되게 농업부문의 소득이 타 부문의 소득에 비해 낮은 점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던 때이기도 했고 특히 우리나라 농촌발전에 큰 성과를 올린 새마을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기도 하던 때이기도했다.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쌀 증산기술개발에 적극적이었으며 산지개간과 간석지(干潟地)간척을 통한 농지 확장에도 적극적이었다. 70년대에 쌀의 자급이 달성되자 80년대에는 농가의 소득증대를 위한 환금작물의 재배확대를 지원했다. 그것이이른바 백색혁명을 구현시키게 했다.

2. 농업기설연구소의 주요 성취

  • 가. 토양조사 및 토양비옥도관리 분야
    • ① 농경지 및 개간/간척 가능한 토지에 대한 정밀토양조사 및 토양비옥도 파악 : 1963년부터 UNDP/FAO와의 협력사업으로 시작된 이 사업들을 1970년부터는 한국정부가 승계하여 1979년까지 완료했다.
    • ② 정부의 농지확장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산지토양 조기숙전화기술(인산비료시용기술 등) 및 간척지토양 조기 제염기술(환수제염법 등)을 개발했다. (1970년대)
    • ③ 이 사업들을 통하여 얻은 정보를 토대로 1980년부터는 농토배양 10개년사업을 추진했다.(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토양조사사업 및 토양비옥도 사업을 위해 채용했던 대충요원 15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 나. 농업환경 분야 : 공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던 당시 대기와 수질오염이 농업에 미치는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이 우려되어 이 분야에 대한 기초정보 확보와 대응기술개발을 위한 체계를 확립했다. 지구온난화현상과 산성비 문제와 같은 새로운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체계도 확립했다.
  • 다. 작물보호분야 : UNDP의 지원 하에 추진된 작물보호훈련강화사업, USAID 차관으로 추진된 작물개량연구사업, 국제미작연구소와의 협력사업 등을 통하여 병, 해충 및 잡초에 대한 기초정보를 확보하고 합리적인 작물보호 기술을 개발 했으며 인력의 국제 교류를 통하여 이 분야의 연구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 라. 버섯재배기술분야 : 무엇이든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하려던 정부는 일찍(1966)부터 우리 농가나 연구자 모두에게 생소한 양송이를 재배하여 수출하려는 시도를 했다. 의욕이 앞섰던 이 시도는 많은 농가에게 시행착오의 쓴잔을 마시게 했다. 식물환경연구소 때부터 시작한 양송이재배기술에 대한 연구는 농업기술연구소 때 큰 성공을 이루었다. 1966년의 양송이 수출금약이 미화 30만 달러였던 것이 1977~78년에는 미화 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양송이버섯 연구의 성공은 다른 내수용 버섯재배기술연구로 이어져 버섯산업을 발전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R&D의 성과를 짧은 기간에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 마. 농업생명공학분야 : 1976년 유전연구담당관실의 신설은 농업생명공학연구의 단초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유전공학기법을 농작물의 효율적인 육종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식물환경연구소 1962. 04 ~ 1973. 08

1962년 농사원 시험국에 속했던 식물환경부는, 농사원이 농촌진흥청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식물환경연구소로 승격됐다. 연구소 발족 당시 연구소는 분석화학과, 토양 1과, 토양 2과, 병리과, 곤충과로 구성되었으며 연구원 정원은 45명이었다. 지금의 안목으로 보면 발족 당시 연구소의 조직과 정원은 빈약한 것이었지만 당시로써는 큰 변화였다.

당시 정부가 농업분야의 연구와 기술보급을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취한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었다. 정부는 낙후한 우리 경제를 의욕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총 7차에 걸쳐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그 원년이 1962년이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에서는 농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산업인력의 5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감안 할 때 정부의 이 같은 착안은 매우 적절했던 것이다.

정부가 농사원을 농촌진흥청으로 승격시킬 때 농촌진흥청에게 큰 임무를 부여했다. 종전에 해오던 농업관련 연구업무 이외에 전국에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중앙기관의 임무도 부여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농업기술보급업무는 농림부, 농협중앙회, 토지개량조합연합회 등에 분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농업기술보급에 혼선이 따르는 등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 발족된 농촌진흥청에 농업기술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두 바퀴를 달아준 것이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중앙의 연구기관과 지방의 도농촌진흥원과 시군농촌지도소 등 전국을 망라하는 기관이 되었다.

농촌진흥청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짐에 따라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들의 활동영역도 확대 되었다. 이점에 있어서 식물환경연구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토양, 비료, 작물보호 등의 연구를 추진함에 있어서 각도농촌진흥원과 연락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시군농촌지도소와의 협력도 잘 이뤄졌다. 식물환경연구소의 임무는 농업의 기반기술에 관련된 연구였지만 개발된 기술의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농촌진흥청이 농업기술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두 기능을 갖췄었기 때문이었다.

식물환경연구소는 1973년, 농업기술연구소로 개편될 때가지 농업기반기술 확립을 위한 괄목할만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1963년과 1964년에 발족된 UNDP/FAO 한국토양 비옥도사업과 토양 조사사업은 매우 뜻있는 사업이었다. 이 두 사업을 통하여 우리나라 농경지 토양의 비옥도와 형태적 특성이 상세하게 파악되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의 전문 인력을 대거 양성할 수 있었다. 두 사업기간 중 채용됐던 대충요원 150여명을 사업 종료 후 정규직화 함으로써 식물환경연구소 뿐 아니라 유관기관의 연구인력 확충에 기여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1965년에는 특히 수도작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저위생산지 개량사업도 추진했다.

1967년, 식물영양과와 응용균이과가 증설되었다. 신설된 식물영양과는 토양 1, 2과와 함께 토양과 작물과의 관계에 대한 기초연구역량을 강화하게 했다. 응용균이과의 신설은 정부가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농가에 보급하려던 수출용 양송이재배가 기술적 난관에 봉착했을 때 미생물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식물환경연구소가 버섯연구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어서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식물환경연구소는 이 임무를 정부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성취하여 버섯산업을 조기에 정착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1971년에 착수된 UNDP/FAO 작물보호강화훈련사업도 괄목할만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연구원의 해외연수, 외국전문가의 초빙, 새로운 연구장비의 도입 등을 통하여 작물 보호 분야의 연구능력을 향상시키고, 작물보호와 관련된 기초정보의 확보에 기여했다.

이와같은 괄목할만한 사업을 수행하면서 1965년에는 연구소 본관건물을 신축했고 1969년에는 응용균이과 연구실과 버섯재배 시험시설을 신축했다.

식물환경연구소는 1962년에 설립된 이래 1973년에 농업기술연구소로 개칭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농업기반기술 분야의 연구기반을 수립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국가의 경제력이 오늘에 비해 현저히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기여했다.(글상자 1 참조)

글상자 1. 식물환경연구소의 성공적 임무 성취를 가능하게 한 요인들 :

식물환경연구소가 그 소임을 성공적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기여했다. 그 가운데 정부가 농업을 중요시한 정책의 채택, 채택된 정책의 지속성, 연구기관의 안정성, 연구원의 열의 등이 특히 중요한 몫을 했다.

  • 1. 정부의 지속적인 농업중시정책 : 1962-1966, 제 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서는 농업발전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이 계획서의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본 계획은 산업인구의 태반을 점하는 농업부문에 중점적인 개발목표를 두어 농업생산력의 향상과 소득증진으로서 경제구조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그럴 뿐 아니라 계획의 내용에서도 쌀과 보리의 생산량을 각각 29%와 17%(1960년 대비) 씩 증가 시킬 것을 목표로 정했다. 이밖에도 새로운 농지와 초지개발, 축산의 기업화, 농촌주택개선, 치산치수, 등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농업을 중요시하는 정책은 이 뒤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 초반의 국민 1인 당 GNP가 미화 100달러 수준이었는데도 식물환경연구사업에 당시로써는 거액을 투자했던 것이다.
  • 2. 연구기관의 안정성 : 정부의 정책에 지속성이 있었고, 연구소는 계속 확대되는 추세에 있었으며 농업연구기관에 구조적인 교란이 없었으며 기관장을 비롯한 상위직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는 일이 없었다. 이 사실이 연구소가 한번 계획한 일은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 3. 연구원들의 일체감 : 당시 공무원들이 급료는 미화로 환산했을 때 월 200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급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넉넉지 않은 급료를 받으면서도 격무를 감당하며 직장은 일체감을 잃지 않았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식물환경연구소가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농촌진흥청 발족 이전

1949년에 발족한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중앙농업기술원에 농예화학과의 병리곤충과가 설치된 것이 농업과학기술원의 태동(胎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7년, 중앙농업기술원이 농사원으로 승격될 때 그 산하기관인 농업시험장에 농화학과, 토양과, 기초연구과가 설치됐다. 이어 1961년에는 농사원 시험국에 농화학과, 토양과, 병리곤충과로 구성된 식물환경부가 설립된다. 그 임무 면에서 볼 때 식물환경부가 농업과학기술원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에 농업의 기반인 토양과 농업기술의 주요 요소들인 농자재와 작물보호와 관련된 연구기능을 갖춘 부서가 식물환경부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나라 전체가 매우 어려웠던 때다.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농업기술연구를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이 매우 빈약했던 상황에서 6.25 동란까지 일어났다. 빈약했던 연구시설은 폐허화하고 대부분의 연구 자료들은 분실되었고 연구에 종사할 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지난했다. 농사시험연구는 빈손 맨주먹으로 해야 했다.

이런 고난의 와중에서도 연구자들은 그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 토양연구 분야에서는 기존의 기록들을 정리하여 충남과 경남지역의 토성조사보고서를 발간하고 당시, 쌀수량을 올리는 데에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이른바 노후답(老朽沓)과 추락답(秋落沓) 개량을 위한 연구와 전시포장을 운영하기까지 했다. 작물보호분야에서는 잡초와 병해충 방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농화학 분야에서는 비료와 농약의 화학분석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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